1960~1970년대 서울은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건설이 한창이었고 콘크리트가 부족하게 되자 원료가 되는 자갈, 모래를 얻기위해 산을 통째로 부수기 시작했고 서울 동부지역은 용도에 딱 들어맞는 돌산인 용마산을 선정했다.
용마 폭포공원은 본래 서울특별시 산하 건설자재사업소(당시 명칭은 역청사업소)가 있던 위치로, 채석장 단지였었다. 그로 인해 매일같이 발파음이 들릴 정도였고 다이너마이트로 캐낸 돌을 부숴서 아스팔트와 섞어 도로 포장에 주로 쓰는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생산을 하고 있었기에 각종 분진과 매연으로 주변의 민원 대상이었다. [출처; 나무위키]
유년시절 면목동에 살았었고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때 땅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그렇게 산의 일부분을 잃고 시간이 흘러 다시금 새로운 단장을 하여 1991년 우리 앞에 등장한 곳이 용마폭포공원이다.
중랑천 범람을 막기 위해 1970년대에 축조되었던 제방이 장미로 아름답게 물들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로 실직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에서 공공근로사업을 시작할 때, 중랑구는 이 사업으로 중랑천 제방에 장미를 심기 시작했다..
[출처; 중랑장미공원 이야기]
우리의 기후 특성상 여름철 집중 호우가 발생하기 쉬워 중랑천의 물이 도심으로 들어올 위험이 많았고 실제 넘쳐서 주택이 잠기는 피해를 입는 침수구역이었고 제방을 쌓아 막았는데 식물을 심어 제방의 효과를 좀더 보충하고 도심의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계획은 적중하여 해마다 ‘서울장미축제’라는 이름으로 이 지역 뿐만아니라 타지역에서도 많이 찾는 명실상부한 봄축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미래사회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공존을 통한 세상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목적앞에 주변을 파괴했지만 다시금 서로 살기 위해 아름다운 공존을 택하는 것!
생명은 우열이 아닌 공존을 통해서 그 존재의 이유가 빛난다는 점이다
중랑의 정신은 이런 자랑스런 자산위에 세워져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중랑’의 유래
대나무의 잎과 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물결에 비유한 죽랑(竹浪)을 소리 나는대로 쓰다 보니 가운데 물결이란 전혀 의미없는 이름이 된 것[출처; 한국지명유래집]
중랑의 정신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지점은 회복과 치유를 통해 공존을 모색했다는 점이고 이것을 계속 살려나가고 발전시킨다면 미래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풀 한포기, 돌 하나도 가꿈을 통해 아름다운 동행으로 승화시켰듯이 다가오는 시대의 가치도 이런 기반위에서 성장해야 된다고 본다면 자라나는 세대에게 훌륭한 자산을 보여주고 물려줄 수 있는 중랑구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