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과 상봉터미널 (아듀! 상봉터미널!)

날씨가 화창하고 기온도 적당하며 함께하는 사람들도 좋았던 탐방날, 상봉터미널 주변에서 김시덕 박사님의 설명을 듣는다. 재미있지만 객관적이고 담담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내가 알던 우리동네였나 싶은 게 새롭다. 박물관에서 이미 없는 사람들의 흔적들을 관찰하는 느낌이다. 동시에 비록 흐릿하고 다양하진 않아도 내가 주관적으로 경험했었던 기억들을 꺼내본다.

망우로의 기억 (망우역, 상봉터미널 주변)

까맣게 보이는 삼표연탄 공장 <1990년 항공사진>

까맣게 보이는 삼표연탄 공장 <1990년 항공사진>

어렸을 적 지나쳤던 망우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삼표연탄 공장이었다. 어린 나에겐 무척이나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아주 큰 공장이었다. 안을 들여다볼 순 없었지만 그 담을 훌쩍 넘는 검은 연탄가루 언덕으로 미루어 굳이 간판을 찾아보지 않아도 연탄을 만드는 공장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같으면 거주지에 인접하여 그런 공해물질을 내뿜는 공장이 있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할테다. 하지만 당시 어린 나의 기준으로는 사람들의 큰 불만없이 삼표연탄은 꽤 오랜시간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것 같다. 공장 주변 가정에서는 흰 빨래가 검게 변한다 하여 주변 사람들 정도만 조금 불편하겠구나 느끼는 정도였다.

삼표연탄 서쪽에 있는 철로 밑 쌍굴을 지나야 하는 동네에 살던 친구도 갑자기 기억났다. 상봉터미널 주변에서 놀다 어둠이 내린 저녁 쌍굴 근처에서 헤어졌는데 어둑어둑하니 가는 길이 무섭지 않을까 한참 바라보았었다.

성인이 되고 언젠가 보니 삼표연탄공장 부지가 운전면허학원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있다. 경기도 어디인가로 셔틀버스를 타고 편도 30~40분을 들어가야 했던 운전학원을 다니며 면허를 땄는데 그 후 바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학원을 발견하며 아쉬워 했었다. 같은 학원인지는 몰라도 삼표연탄 자리 운전면허학원은 없어지고 대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생기고 운전면허학원은 상봉터미널에 새로 자리잡게 되었다.

강원도 어디쯤인가 놀러가는 기차를 타고 망우역을 지나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어느날부터인가는 망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팔당까지 놀러갈 수도 있었고 나중에는 대성리, 춘천도 갈 수 있었다. 망우역 등에서는 지하철에서 승객의 승하차가 끝난 후에도 잠시 역에서 머무르는 경우도 많았다. 여객 기차나 화물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서였다.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냥 별 생각없이 지나치던 시간들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화물열차를 보기 어려워졌다는 게 이제야 기억이 난다.

주변 어른들 말씀으로 상봉터미널 자리 쯤에 기다란 전봇대를 만드는 공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큰 차량이 전봇대를 실어 나르고 꽤나 복잡했었다고 한다.

나에게 상봉터미널은 귀하디 귀한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있었던 핫플레이스로 기억된다. 학교 앞 떡볶이만 먹던 여중생들이 이런 복합시설이 생기다니 우리 동네 너무 좋다고 꺄륵대며 신나게 놀곤 했었다. 나는 상봉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여행한 기억은 많이 없지만, 면목동 토박이인 남편은 강원도쪽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항상 상봉터미널을 애용했다고 한다. 예전엔 버스도 많이 다니고 했던 것 같은데 나중엔 버스가 가득차 있어야 할 공간에 노란 운전면허 연습용 차량이 가득했었다.

자동차 판매점이나 렌트카 업체도 기억나고 경륜장도 꽤 유명했던 것으로 안다. 특히 경륜장은 2021년 전 세계를 휩쓴 K-Culture 의 주역 중 하나인 ‘오징어게임’의 배경이 된 곳이다. 주인공 기훈(이정재)이 경마장에서 돈을 많이 따지만 소매치기 당하고 사채업자도 만나며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한 바로 그 공간이다. 드라마를 보며 이상하게 낯이 익네 싶다가 상봉터미널임을 알아채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오징어게임’ 한 장면 속 상봉터미널

‘오징어게임’ 한 장면 속 상봉터미널

망우역과 상봉터미널의 변화

80여년 간 망우역은 서울과 강원도를 이어주는 철도역으로 화물 운송 중심에서 여객 운송 중심으로의 변화를 겪었다. 중앙선이 개통되고 경춘선도 지나가는 등 강원지역까지 지하철이 확장되는 중심에 서게 되었다. 아울러 광역 도로망의 확충, 서울의 확장과 인접 구리시와의 연담화로 망우역 주변은 더 이상 서울의 변두리가 아닌 서울 동북부의 중심 생활권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역사도 없는 보잘것 없던 간이역에서 출발한 망우역의 역할과 철도교통망의 발전은 주변지역의 모습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반면 찬란하게 등장했던 상봉터미널은 동서울터미널로의 노선 이전, 망우역을 위시한 철도의 발전, 지하철 상봉역과의 연계 실패 등 여러 이유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되었고 이윽고 2024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졌다.

초기의 망우역 <중랑구 X (트위터)>

초기의 망우역 <중랑구 X (트위터)>

현재의 망우역 <카카오맵 로드뷰>

현재의 망우역 <카카오맵 로드뷰>

[발표] 망우역-상봉터미널 역사_수정.jpg

시외버스가 가득한 상봉터미널, 1986년 <서울역사아카이브>

시외버스가 가득한 상봉터미널, 1986년 <서울역사아카이브>

운전면허 학원, 주차장으로 쓰이는 상봉터미널, 2023년

운전면허 학원, 주차장으로 쓰이는 상봉터미널, 2023년

망우역 주변의 변화 : 철도변의 상전벽해!

망우역은 강원도와 연결되는 서울의 변두리 역으로 석탄, 골조, 목재, 석재 등 자원을 실어 나르고 이를 가공하는 최적의 장소였다. 자연히 망우역 주변으로는 연탄공장, 레미콘공장, 제재소, 석재 가공 업체 등이 많이 분포하게 된다. 1970~80년대 지도를 보면 주유소(지금의 주유소와는 조금은 다른), 옹기공장, 제약공장 등도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차고지,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과 같은 운수관련 업체들도 보인다. 전형적인 서울 변두리 철도변의 모습이다.